미래가 없는 조직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15/02/135652/

  1. 10년 전 쯤에 부서장은 인품이 참 좋은 분이었다. 그 당시 내 기준으로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만난 몇 안되는 좋은 부서장이었다.(물론 그 당시에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서장의 기준은 지금과 달라졌다.) 왠만하면 화를 내는 일이 없었고, 문제를 일으켜도 문제를 유발한 사람을 탓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바람직한 부서장 상을 실천하던 분이었다.

  2. 그 분께 하루는 술 기운을 빌어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퇴근 일찍 하시고, 주말 근무 하지 마시라고. 우리가 더 회사생활을 하면 가게 될 위치 중 하나가 당신인데, 당신의 지금 회사 생활은 별로 따르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랄 후배들을 위해 좀 더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달라고.

  3. 그 반술주정 반진담의 말에 그 분은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기억에는 그 분도 이미 술을 적당히 드신 상태라 제정신으로 그 말을 들으셨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렇지만 아마도 내가 했던 말은 제대로 들으셨던 것 같다. 그리고 해주고 싶으신 말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그 이후의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4. 그때도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서야 관리자라는 게 참 할일이 많다는 걸 잠시 관리자 역할을 해 보고 알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조직 관리, 업무 관리 외에 남에게 보일 수도, 말해줄 수도 없는 이런 저런 일들을 하고 계신다는 걸. 그리고 특히 그 당시 그 부서장의 상사가 매주 토요일 근무를 요구했다는 것도.

  5. 아마도 그 부서장께서는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셨을 듯 한데, 그러면서도 “쨔샤, 너도 나중에 해봐. 그러면 알게 될거야.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어서 그렇겠냐” 라고 말을 해주셨을 것 같다.

  6. 어떤 국영수 과목을 가르치는 학원에서 각 학원 강사 중에 뛰어난 실적을 낸 강사에게 ‘책임 강사’라는 직위를 주고 있었다.

  7. 그런데 언제가부터 몇 년 째 ‘국어’ 과목 강사만 ‘책임 강사’가 되고 있었다. 분명히 다른 과목의 강사 중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낸 사람이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오직 ‘국어’ 과목 강사에게만 그 기회가 돌아갔다.

  8. 마침 학원장 역시 ‘국어’ 강사 출신이라 다른 과목에 비해 시험에서 배점이 낮은 ‘국어’ 과목에 대한 편애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강사들이 많았다.

  9. 그래도 한동안 국어 강사와 나머지 과목 강사들의 직위 획득 비율이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매년 국어 강사 한 명에 다른 과목 강사 한 명 정도의 비율로 ‘책임 강사’ 정도. 그 결과 국어 과목 출신의 ‘책임 강사’의 전체 비율과 영어, 수학 출신의 ‘책임 강사’이 그래도 큰 차이가 있는 수준은 아니었는데, 그 비율이 언젠가부터 영어, 수학 강사가 ‘직위’를 받는 일이 몇 년째 사라지고, 오직 ‘국어’강사만 ‘임원 강사’를 받는 일이 생겼다.

  10. 그러나 (평) 영어, 수학 강사들이 수근대기 시작했다. 이 학원은 국어 강의를 하지 않으면 비전이 없구나 라고. 몇 년 째 그런 모습을 보며 나름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던 영어, 수학 강사들이 다른 학원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11. 가뜩이나 ‘책임 강사’가 될 기회가 적은 영어, 수학 과목의 강사들 중에 뛰어난 강사가 사라지니 더욱더 영어, 수학 과목에서 ‘책임 강사’가 되는 횟수가 줄었다.

  12. 하지만 학원장은 ‘우리 학원에는 훌륭한 영어, 수학 강사가 없네요’라는 말만 한다.

  13. 과연, 이 학원에 영어, 수학 과목을 듣겠다는 학생이 찾아올까?

멋진 선배, 그리고 그 선배가 조직에서 대접받는 모습을 보지 못하면 후배들은 그 조직을 신뢰하지 않는다. 조직을 신뢰하지 않는 조직원으로 구성된 조직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