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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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5 우리 사회가 뭔가 단단히 헷갈리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서 국가의 강력한 통졔를 바란다면 헌법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일단 자유민주주의의 ‘자유’와 ‘민주’는 빼야 할 것 같으니까. 대만민국의 국가적 정체성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공산주의가 싫어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거라면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옳다. 그리고 그 작은 정부가 왜 시장에 대한 규제 철폐만 주장하고, 사상, 언론, 표현, 결사 등의 영역에서는 작은 소리만 있어도 사회가 불안정하고 무질서해진다며 통제하려고 하는 지 합리적인 이유를 내 놓아야 한다. 큰 정부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서 일단 벗어나, 국가와 시민의 기본적인 관계에 대해서부터 다시 고민해 볼 일이다.

p217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 말이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전방위적으로 큰 정부, 더 나아가 제왕적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국가는 어떤 경우에도 개인의 기본적인 자유와 보편적 인권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민주주의의 원리가 실현되는 사회를 체험해 본 적도 만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한 지 60년이 넘은 지금도 말이다.

p219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들도 걱정만 할 필요는 없다. 정말 정부가 99%의 서민이 아닌 1%의 부자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정부를 갈아치우면 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다행히 부자보다 서민이 압도적으로 많을 테니 말이다. 다수결이니 모든 사람은 한 표씩 행사할 수 있다. 불만이 있으면 규합하고 집결해 투표하면 된다.

p237 진보주의자들이 좀 더 해야 할 고민은 가령 이런 것들이다. 어떻게 하면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의 삶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바로 당신을 위해 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것보다 어떤 게 더 정확한 진보의 관점인가, 어떻게 말하는 게 내가 진보임을 더 확실히 보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아군으로부터 쭉정이 회색분자로 찍히지 않을까를 더 고민하는 것 같다. 이렇게 ‘그들만의 리고’에 머물러 있는 그들,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던 시민들의 발길은 이미 멀어진 지 오래다.

p251 우리는 아직도 시스템을 더 좋게 바꿔야 한다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좌파든 우파든 마찬가지다. 흔들림을 느끼는 것은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아직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 그저 분노를 분출만 하는 게 아니라 제도 안에서 그 분노를 조직화하고, 그 조직을 통해 서로 정정당당하게 대결해 승패를 가르고, 그 결과에 따라 타협하고 더 좋은 시스템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합리적 민주주의의 경험을 아직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다.